비타민D 햇빛을 잃은 도시의 아이들과 구루병 /소설 같은 이야기(1/3편)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과 뿌연 하늘. 거리의 사람들

이번부터는 소설 같은 이야기 편입니다

지금까지는 비타민 D가 무엇인지, 어떻게 먹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이번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한 이름인 비타민 D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작에는 햇빛을 잃어버린 도시와, 다리가 휘어 제대로 걷지 못했던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비타민 D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한 시대의 아픈 풍경 속으로 함께 가볼까요.

햇빛을 잃어버린 도시

19세기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유럽의 도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석탄을 태운 연기와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건물은 점점 높아지고 골목은 좁아졌습니다.

집과 집 사이에는 햇빛 한 줄기가 겨우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아침인지 오후인지 모를 만큼 흐린 날도 많았습니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사정은 더 좋지 않았습니다.

작은 집에 여러 가족이 모여 살았고, 아이들은 바깥보다 어두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 도시의 아이들 사이에서 이상한 병이 자꾸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걷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또래보다 걷기 시작하는 시기가 늦기도 했고, 걷기 시작한 뒤에도 다리에 힘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가 활처럼 휘거나 무릎이 안쪽으로 굽는 아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갈비뼈와 손목, 발목 모양이 달라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심한 아이는 제대로 서거나 걷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병을 **구루병(rickets)**이라고 불렀습니다.

구루병은 산업혁명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산업도시로 몰려들면서 훨씬 흔한 병이 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유럽과 북미 여러 도시에서 어린이에게 매우 흔한 질환으로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타민 D 부족뿐 아니라 칼슘과 인의 문제 등 여러 원인이 구루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 병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아이들은 잘 먹는데 왜 뼈가 휘었을까?

의사들도 이유를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러운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운동이 부족하거나 집이 너무 습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도시의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영양 부족, 나쁜 주거환경, 공기 오염, 햇빛 부족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같은 나라에서도 햇빛이 잘 드는 지역에서는 구루병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890년 의사 **테오발드 팜(Theobald Palm)**은 여러 지역을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햇빛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구루병이 적고, 햇빛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더 흔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비타민 D라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병은 음식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비린 대구 간유 한 숟갈

그런데 과학자들이 답을 찾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이상한 치료법 하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대구 간유(cod liver oil)**였습니다.

대구의 간에서 짜낸 기름입니다.

특히 북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구루병에 걸린 아이에게 대구 간유를 먹이는 방법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맛은 끔찍했습니다.

걸쭉하고 비렸습니다.

아이들은 숟가락만 봐도 고개를 돌렸을 것입니다.

코를 막고 삼키거나, 뱉어내려고 버티는 아이도 있었겠지요.

그래도 부모들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왜 효과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대구 간유를 먹은 아이 가운데 상태가 좋아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뼈가 하루아침에 곧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조금씩 기운을 되찾고 구루병 증상이 좋아지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경험은 있었지만 설명은 없었습니다.

“대구 간유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이 질문이 훗날 비타민 D 발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햇빛, 다른 쪽에서는 대구 간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구루병을 단순히 도시의 환경병으로 보는 데서 벗어나 음식과 햇빛을 각각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대 영국의 의사이자 연구자 **에드워드 멜런비(Edward Mellanby)**는 개를 이용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특정 식단을 먹인 어린 개들에게 구루병과 비슷한 뼈 이상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런 개에게 대구 간유를 먹이자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멜런비는 대구 간유 속에 구루병을 막는 어떤 영양 성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물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미 비타민 A가 알려져 있었고 대구 간유에는 비타민 A가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나왔습니다.

“구루병을 낫게 하는 것도 비타민 A 때문 아닐까?”

충분히 그럴듯한 추측이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치료가 효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햇빛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대구간유먹이는장면.작은 창문박으로 언덕위 집이보이는 바닷가 풍경.

겨울의 빈, 아이들을 발코니로 데리고 나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구루병이 큰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전쟁 후 식량 부족까지 겹치면서 아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1919년 무렵 영국 의학연구위원회의 **해리엇 칙(Harriette Chick)**과 연구팀은 빈으로 가서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여러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음식 때문일까?

공기 때문일까?

감염병일까?

햇빛 때문일까?

아이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병동 안에서 생활하는 아이도 있었고, 바깥 발코니에서 햇빛을 받도록 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일부 아이에게는 대구 간유를 먹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구 간유를 먹은 아이도 좋아졌고, 햇빛을 충분히 받은 아이도 좋아졌습니다.

X선 검사에서도 뼈가 회복되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이제 수수께끼는 더 커졌습니다.

대구 간유와 햇빛.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어떻게 같은 병을 좋아지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이 다음 단계의 발견으로 연구자들을 밀어붙였습니다.

햇빛을 병원 안으로 가져오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의사 **쿠르트 훌트쉰스키(Kurt Huldschinsky)**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겨울에는 햇빛이 부족했습니다.

그렇다면 햇빛과 비슷한 빛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쬐면 어떨까요?

그는 구루병이 있는 아이들에게 인공 자외선(UV) 램프를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한쪽 팔이나 다리만 빛에 노출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빛을 직접 받은 뼈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뼈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빛이 단순히 뼈를 직접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 몸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 물질의 정체는 알 수 없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아직 퍼즐 조각을 맞추는 중이었습니다.

대구 간유의 진짜 주인공은 비타민 A였을까?

이제 다시 대구 간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대구 간유에는 비타민 A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는 구루병을 막아주는 성분 역시 비타민 A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생화학자 **엘머 맥컬럼(Elmer McCollum)**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미 비타민 A 연구에 깊이 관여했던 과학자였습니다.

맥컬럼은 생각했습니다.

“비타민 A를 없앤 뒤에도 대구 간유가 구루병에 효과가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답이 분명해집니다.

비타민 A를 없앴는데 효과까지 사라진다면 주인공은 비타민 A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비타민 A가 없어졌는데도 구루병에 효과가 남아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구 간유 안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물질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1922년, 대구 간유 속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비타민

맥컬럼과 연구진은 대구 간유에 산소를 통과시키는 처리를 해 비타민 A의 작용을 없앴습니다.

처리된 대구 간유는 더 이상 비타민 A 결핍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구루병에 대한 효과도 사라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루병을 막는 힘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비타민 A는 사라졌지만 구루병에 대한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답은 분명했습니다.

대구 간유에는 비타민 A 말고도 뼈와 구루병에 관련된 다른 성분이 있었습니다.

1922년 맥컬럼은 이 새로운 항구루병 인자를 **비타민 D(Vitamin D)**라고 불렀습니다.

이미 비타민 A, B, C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알파벳인 D가 붙었습니다.

그렇게 비타민 D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 다리가 휘어가던 아이들.

아이에게 억지로 비린 대구 간유를 먹이던 부모들.

햇빛을 찾아 아이들을 발코니로 데리고 나갔던 연구자들.

그리고 대구 간유 속 보이지 않는 물질을 찾던 실험실.

오랫동안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장면들이 비로소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퍼즐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올게요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비타민 D는 장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돕고 정상적인 뼈의 형성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한 비타민 D 결핍은 어린이에게 구루병, 성인에게는 골연화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NIH 비타민 D 자료 보기

다만 구루병을 비타민 D 하나만의 병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에는 비타민 D 부족뿐 아니라 칼슘이나 인의 부족, 유전질환이나 신장질환 등 여러 원인이 구루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비타민 D가 뼈 건강에 중요하다고 해서 영양제를 많이 먹을수록 더 좋은 것도 아닙니다.

비타민 D는 필요한 양을 적절하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하나 있습니다.

대구 간유 속에 비타민 D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왜 햇빛만 쬐어도 구루병이 좋아졌던 걸까요?

“햇빛에는 비타민 D가 들어 있는 걸까?”
“빛을 피부에 쬐었는데 어떻게 뼈가 좋아졌을까?”
“햇빛과 대구 간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만나는 걸까?”

다음 소설 같은 이야기 2/3편, 비타민 D|햇빛 비타민의 비밀에서는 과학자들이 햇빛과 자외선 속에서 또 하나의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이 글은 비타민 D와 구루병의 역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콘텐츠입니다.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당시 생활 모습을 묘사한 일부 문장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했습니다. 현재의 질병 진단이나 치료를 위한 의학적 조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뼈 통증, 근육 약화, 성장이나 뼈 변형과 관련된 증상이 있다면 비타민 D 부족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거나 고용량 영양제를 복용하지 말고 의료진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