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D 햇빛을 잃은 도시의 아이들과구루병 /소설 같은 이야기(1/3편)
이번부터 3편까지 소설 같은 이야기 편 이예요.
비타민 D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한 시대의 아픈 풍경으로 함께 가볼까요.
19세기,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유럽의 도시.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이 하늘을 뿌옇게 덮었다. 건물은 빽빽이 들어차 좁은 골목엔 햇빛 한 줌 들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도시의 아이들 사이로, 이상한 병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잘 먹는데도, 특별히 다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몸이 서서히 무너져 갔다.
아이들의 뼈가 약해지고 휘어졌다. 다리가 활처럼 굽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 병을 '구루병(rickets)'이라 불렀다. 유독 햇빛이 부족한 도시의 가난한 골목에서 이 병이 기승을 부렸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골목이 좁고 어두운 동네일수록 아픈 아이가 많았다.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병의 정체를 모르니 손쓸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민간의 지혜가 하나 있었다. 북유럽의 바닷가 사람들은, 아이가 이 병에 걸리면 '대구 간유(cod liver oil)'를 먹였다. 대구라는 생선의 간에서 짜낸 기름이었다. 맛은 비렸지만, 신기하게도 그걸 먹은 아이들이 나아지곤 했다.
효과가 있다는 건 경험으로 알았다. 하지만 '왜' 효과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오래된 할머니의 지혜처럼 전해질 뿐이었다. 아이들은 비린 기름을 넘기기 싫어 얼굴을 잔뜩 찡그렸지만, 어머니들은 그 한 숟갈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20세기 초, 과학자들이 이 수수께끼에 달려들었다. 한 연구자는 개를 데리고 실험을 했다. 일부러 구루병에 걸리게 한 개에게 대구 간유를 먹이자, 구루병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대구 간유 속 무언가가 뼈를 지킨다는 사실이, 이제 과학의 무대 위로 올라온 것이다. 오랜 세월 전해 오던 할머니의 지혜가, 마침내 실험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대체 무엇일까? 처음에 과학자들은 짐작했다. "이미 알려진 비타민 A 덕분이 아닐까?" 대구 간유엔 비타민 A가 들어 있었으니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짐작은 짐작일 뿐, 확인이 필요했다. 과학은 '아마도'가 아니라 '분명히'를 원하니까.
1922년, 미국의 생화학자 엘머 맥컬럼(Elmer McCollum)이 결정적인 실험을 했다.
그는 대구 간유에서 비타민 A의 효과를 없애는 처리(가열 등)를 한뒤 실험을 했다. 만약 구루병을 낫게 한 주인공이 비타민 A라면, 이제 그 효과도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비타민 A를 없앤 대구 간유도, 여전히 구루병에 효과를 보인 것이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결과는 같았다. 비타민A가 사라져도, 뼈를 지키는 힘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맥컬럼은 무릎을 쳤다. "주인공은 비타민 A가 아니다. 대구 간유 속에 아직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물질이 숨어 있다." 그는 이 새로운 인자에 이름을 붙였다. 이미 비타민 A, B, C가 있었으니,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이번엔 'D'였다. 비타민 D가 세상에 이름을 얻는 순간이었다.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 시작된 오랜 수수께끼가, 마침내 또렷한 이름 하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게 뭐냐면요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이제 현실로 돌아올게요.
도시 아이들의 뼈를 지켜 준 그 물질이, 바로 오늘 우리가 아는 비타민 D예요. 이름부터가 뼈가 휘는 병과의 오랜 싸움에서 나왔을 만큼, 비타민 D는 뼈 건강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오늘날에는 칼슘이 몸에 잘 흡수되고 뼈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도록 돕는 것으로 이야기돼요. 그만큼 뼈 건강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영양소죠.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뼈 건강을 옆에서 돕는' 영양소라는 뜻이지, 특정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런데 이야기에는 아직 큰 수수께끼가 남아 있어요. 왜 하필 '햇빛이 부족한' 도시에서 이 병이 유독 심했을까요? 대구 간유를 먹지 않아도, 그저 햇빛을 쬐는 것 만으로 나아지는 아이들이 있었던 건 또 왜 일까요? 다음 이야기(7편)에서는, 비타민 D가 '햇빛 비타민'이라 불리게 된 비밀을 들려드릴게요.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Starved for Light: The Long Shadow of Rickets and Vitamin D Deficiency》
Christian Warren
한때 구루병은 햇빛이 부족하고 공기가 오염된 도시에서 수많은 아이를 괴롭혔습니다. 이 책은 구루병이 어떻게 널리 퍼졌으며, 햇빛과 비타민 D의 중요성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의학과 공중 보건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봅니다. 이 글의 배경이 된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와 아이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The Vitamin D Solution》Michael F. Holick
비타민 D와 햇빛, 뼈 건강의 관계를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Rickets, Including Osteomalacia and Tetany》 Alfred F. Hess
1929년에 출간된 구루병 연구의 고전으로, 당시 의학계가 구루병을 어떻게 관찰하고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역사 자료입니다.
📚 참고자료- 미국 국립보건원(NIH) Office of Dietary Supplements
- 비타민 D – Health Professional Fact Sheet
https://ods.od.nih.gov/factsheets/VitaminD-HealthProfessional/ - 비타민 K – Health Professional Fact Sheet
https://ods.od.nih.gov/factsheets/VitaminK-HealthProfessional/
- MedlinePlus – Vitamin D
https://medlineplus.gov/vitamind.html - Linus Pauling Institute – Vitamin D
https://lpi.oregonstate.edu/mic/vitamins/vitamin-D
- 비타민 D – Health Professional Fact Sheet
https://ods.od.nih.gov/factsheets/VitaminD-HealthProfessional/ - 비타민 K – Health Professional Fact Sheet
https://ods.od.nih.gov/factsheets/VitaminK-HealthProfessional/
https://medlineplus.gov/vitamind.html
https://lpi.oregonstate.edu/mic/vitamins/vita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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