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K 1과K2,정체를 밝힌 화학자/소설 같은 이야기 (2/3편)

실험실안 실험비이커 안에 지주개자리풀이 들어있고 왼쪽에 창문, 오른쪽 실험실 배경.

이전 편에서 담이 비타민 K에 이름을 붙였죠. 그런데 정작 그 정체는 아직 안갯속이었어요. 이번에는 그 안개를 걷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병아리의 출혈을 막아 준 물질에 ‘K’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헨리크 담(Henrik Dam)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작 그것만 순수하게 뽑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른 성분이 잔뜩 섞여 있는 상태에서는 이 비타민이 정확히 어떻게 생긴 물질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름은 있는데 얼굴은 모르는 셈이었습니다. 얼굴을 모르니 이 비타민을 제대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다 건너 미국, 세인트루이스

이 도시의 한 대학 실험실에도 같은 수수께끼를 쫓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화학자 **에드워드 도이지(Edward Doisy)**였습니다.

도이지는 복잡하게 뒤섞인 물질 속에서 원하는 성분을 분리하고 그 구조를 알아내는 일을 해오던 화학자였습니다. 이전에도 여성호르몬을 비롯해 몸속에 아주 적은 양으로 존재하는 물질을 연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물질 덩어리에서 진짜 알맹이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그의 전문 분야였습니다.

도이지와 연구팀은 비타민 K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분리와 정제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아주 적은 양으로 숨어 있는 물질을 순수하게 붙잡는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내는 것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분석 기계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아주 적은 양의 물질도 정교한 기계로 분석할 수 있지만, 1930년대 실험실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많은 양의 원료를 가져와 녹이고, 걸러내고, 다시 나누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원하는 물질을 조금씩 좁혀가야 했습니다.

한 번 분리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물질이 섞여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더 순수하게 만들고, 그 물질이 정말 병아리의 출혈을 막는지도 다시 시험해야 했습니다. 아주 작은 양의 비타민을 손에 넣기 위해 수많은 실험이 필요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물질을 끝까지 찾아내는 것.

그것이 당시 화학자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이 쫓고 있는 것은 병아리의 피를 멎게 했던 이름 모를 비타민이었습니다.

1939년, 비타민 K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를 좇고 있던 사람은 도이지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헨리크 담이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카러(Paul Karrer)**와 함께 비타민 K를 분리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939년 1월, 담과 카러 연구팀은 자주개자리, 즉 알팔파에서 비타민 K 활성을 가진 노란 기름 형태의 물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랫동안 숨어 있던 비타민 K가 드디어 시험관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도이지 연구팀은 그 물질이 완전히 순수한지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더 순수한 비타민 K를 분리하고, 그 물질을 이루는 원자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화학구조를 밝혀냈습니다.

과학에서는 어떤 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물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담과 카러가 안개 속에서 비타민 K의 모습을 찾아냈다면, 도이지와 그의 동료들은 그 얼굴의 윤곽을 하나씩 그려 나간 셈이었습니다.

흔하디흔한 자주개자리 한 포기가 오랜 수수께끼의 열쇠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타민 K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실험실에서 같은 성질을 가진 물질을 만들어 연구할 길도 열렸습니다. 이름만 있던 비타민 K가 드디어 또렷한 정체를 갖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비타민 K의 발견과 화학적 정체가 밝혀진 과정은 최근 의학사 리뷰에도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비타민 K 발견의 역사|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MC

그런데 파고들수록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지주개자리풀꽃이 피어있는 들판 위로 하늘이 보이는 풍경/

그런데 파고들수록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비타민 K’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도이지 연구팀은 비타민 K가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하나는 자주개자리 같은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형태였고, 다른 하나는 세균의 작용과 관련된 형태였습니다. 두 물질은 비슷한 비타민 K 작용을 하면서도 화학적인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식물에서 발견되는 형태는 오늘날 **비타민 K1, 필로퀴논(phylloquinone)**이라고 부릅니다.

세균이 만들어내는 계열은 **비타민 K2, 메나퀴논(menaquinone)**이라고 부릅니다.

하나인 줄 알았던 비타민 K가 알고 보니 여러 식구를 가진 가족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K2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뜻밖이었습니다

K1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햇빛 아래 자라는 푸른 자주개자리였습니다.

그런데 K2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재료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로 미생물의 작용을 받은 어분, 즉 생선으로 만든 사료였습니다.

한쪽에는 들판에서 자라는 푸른 식물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냄새부터 전혀 다른 생선 사료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두 재료에서 비슷한 비타민 작용을 하는 물질이 발견된 것입니다.

1939년 도이지 연구팀의 연구에서는 식물에서 얻은 K1과 세균과 관련된 K2가 서로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 비타민 K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연구가 더 진행되면서 K2 역시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오늘날 영양제에서 볼 수 있는 MK-4, MK-7 같은 이름도 모두 K2라는 큰 가족 안에 속하는 서로 다른 메나퀴논을 뜻합니다.

병아리 한 마리의 출혈에서 시작된 연구가 어느새 푸른 식물과 미생물의 세계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비타민 K 연구는 또 다른 출혈 사건과도 만났습니다

비슷한 시기 북미의 농장에서는 전혀 다른 출혈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소들이 코피를 흘리거나 몸속에서 출혈을 일으켰고, 작은 상처에서도 피가 잘 멎지 않았습니다. 심한 경우 죽는 소도 있었습니다.

이 소들에게는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곰팡이가 핀 스위트클로버 건초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이 원인을 추적한 끝에 훗날 **디쿠마롤(dicoumarol)**이라고 불리는 물질이 찾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물질의 작용은 비타민 K와 정반대였습니다.

비타민 K는 정상적으로 피가 굳는 데 필요한 반면, 디쿠마롤은 비타민 K의 작용을 방해해 혈액이 잘 굳지 않게 했습니다.

병아리의 출혈을 연구하면서는 **“피가 정상적으로 굳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고, 소의 출혈 연구에서는 **“그 과정을 방해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라는 또 다른 답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연구는 이후 비타민 K의 작용을 억제하는 항응고제 연구로 이어졌고, 그 흐름 속에서 훗날 **와파린(warfarin)**도 개발됐습니다. 비타민 K의 화학구조를 알아낸 일이 단순히 비타민 하나의 얼굴을 알아낸 데서 끝나지 않고, 혈액 응고를 조절하는 약을 이해하는 데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노벨상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병아리의 출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세계 과학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94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헨리크 담과 에드워드 도이지에게 공동으로 돌아갔습니다.

담은 “비타민 K를 발견한 공로”, 도이지는 **“비타민 K의 화학적 성질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1943년에 바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1944년에 1943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재단 공식 기록에 따르면 1943년 심사에서는 그해 제출된 후보 가운데 노벨의 유언에 규정된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된 후보가 없어 상을 다음 해까지 보류했고, 이후 담과 도이지가 1943년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어 1944년에 상을 받았습니다.

K의 존재를 발견한 담과 그 화학적 정체를 밝혀낸 도이지.

덴마크와 미국, 서로 다른 나라에서 연구하던 두 과학자가 하나의 비타민으로 역사에 나란히 이름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이 문을 열었다면, 다른 한 사람은 그 안에 불을 켜고 지도를 그린 셈입니다.

발견과 규명,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완성되기 어려웠을 이야기였습니다.

처음 질문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왜 병아리의 피가 멎지 않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새로운 비타민을 찾아냈고, 그 비타민의 구조를 밝혀냈으며, 혈액이 굳는 과정과 그것을 조절하는 약을 이해하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이제 현실로 돌아올게요

담이 **“이런 물질이 있다”**고 문을 열었다면, 도이지와 여러 화학자는 **“그 물질은 이렇게 생겼다”**며 그 안의 지도를 완성해 갔습니다.

그리고 연구가 이어지면서 비타민 K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K1과 K2라고 부르는 여러 형태를 가진 비타민 가족이라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여러분이 D3+K2 제품에서 보는 그 K2라는 짧은 이름도 이렇게 오래전 실험실에서 서로 다른 비타민 K를 하나씩 찾아내고 구분하던 연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무심코 보는 영양제 라벨의 두 글자에도 이런 발견의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에요.

다만 비타민 K는 정상적인 혈액 응고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와파린 같은 비타민 K 길항제 계열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비타민 K나 K2 영양제를 임의로 시작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담당 의사나 약사와 먼저 상의해야 합니다.

다음 마지막에서는 두 형제 중 비타민 K가 어떻게 뼈 연구의 무대로 넓어졌는지, 그리고 왜 비타민 D와 짝을 이루게 되었는지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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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비타민 K의 발견과 연구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장면과 표현을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현재의 질병 진단이나 치료, 영양제 복용을 위한 의학적 조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특히 와파린 같은 비타민 K 길항제 계열 항응고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비타민 K나 K2 영양제를 임의로 시작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담당 의사나 약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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