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C 파프리카에서 찾은 정체/소설 같은 이야기(2/5편)

 

지난 편에서 우리는 바다 위의 무서운 병, 괴혈병을 이야기를 들었어요. 신선한 과일을 먹으면 낫는다는 어렴풋한 단서만 남긴 채, 그 정체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지요. 그런데 그 마지막 열쇠는 뜻밖에도 평범한 저녁 식탁 위, 붉은 파프리카 한 접시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국음식에서 파프리카는 정말 아름다운 장식용 야채 입니다. 특히 식당의 반찬을 만들대는 특히요. 항상 곁에 있던 파프리카가 이렇게 훌륭한 야채인지 이제 알았습니다.오늘은 그 놀라운 여정을 따라가 볼게요.

배 위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

1747년,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는 배 위에서 조용히 한 가지 시도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가 탄 배는 솔즈베리호였습니다.

그는 괴혈병에 걸린 선원 열두 명을 여섯 무리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무리마다 다른 것을 먹여 보았지요. 어떤 이에게는 사과주를, 어떤 이에게는 식초를, 어떤 이에게는 바닷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에게는 오렌지와 레몬을 주었어요.

며칠이 지나자 결과는 분명해졌습니다. 감귤류를 먹은 선원들이 눈에 띄게 기운을 되찾은 거예요. 그중 한 사람은 곧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면 소박한 시도지만, 오늘날 이것은 기록으로 남은 초기 비교 임상시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무언가를 먹여 보고, 그 결과를 비교해 본다는 생각.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중요한 시도였습니다.

린드가 솔즈베리호에서 진행한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James Lind Library의 제임스 린드 실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답을 찾고도 헤맨 50년

그런데 참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어요. 린드의 발견이 곧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예요.

이유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린드 자신도 감귤이 왜 효과가 있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는 신선한 즙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농축한 형태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비타민 C는 열과 보관 과정에서 줄어들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물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요.

게다가 괴혈병의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이론이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감귤류의 효과를 관찰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해군 전체의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마침내 길이 열렸습니다. 길버트 블레인이라는 또 다른 해군 의사가 등장한 거예요. 여러 항해에서 레몬즙의 효과를 보여 주는 기록이 쌓였고, 블레인도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795년, 마침내 영국 해군은 선원들에게 레몬즙을 훨씬 널리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결과는 극적이었어요. 영국 해군에서 그토록 무섭던 괴혈병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린드의 실험으로부터 거의 5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1747년 린드의 실험에서 1795년 영국 해군의 레몬즙 도입까지의 과정은 James Lind Library의 괴혈병 역사 자료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정체를 찾아 나선 과학자

그래도 여전히 남은 질문이 있었어요. 대체 그 과일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사람을 살리는 걸까요.

20세기 초, 이 수수께끼 앞에 한 헝가리 과학자가 섰습니다. 이름은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였어요.

그는 원래 비타민 C를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세포의 호흡과 산화·환원 과정 등을 연구하던 학자였지요. 그러다 식물과 동물의 부신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을 분리했어요. 그는 이것을 ‘헥수론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제는 양이었어요. 이 물질의 정체를 밝히려면 충분한 양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조금밖에 얻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는 미국 메이오클리닉에서도 연구하며 동물의 부신에서 이 물질을 얻었습니다.

센트죄르지가 부신에서 훗날 아스코르브산으로 밝혀진 물질을 분리했다는 기록은 노벨상 공식 센트죄르지 전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어느 저녁 식탁에서 벌어진 일

그때, 뜻밖의 곳에서 길이 열렸어요.

1930년대 초, 센트죄르지는 헝가리 세게드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세게드는 파프리카로 유명한 고장이었지요. 어느 날 저녁, 그의 아내가 신선한 붉은 파프리카를 반찬으로 식탁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센트죄르지는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파프리카에 손이 가지 않았대요. 그는 훗날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먹기 싫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가, 문득 이 채소만은 아직 검사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요. 그래서 파프리카를 들고 곧장 실험실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날 밤,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파프리카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 있었던 거예요. 오렌지나 레몬에도 많았지만, 그것들은 당분이 많아 순수하게 뽑아내기가 어려웠거든요. 파프리카는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양인 500g이 넘는 결정을 만들어 냈고, 이듬해에는 3kg 넘게 생산할 수 있었어요.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나눠 줄 만큼 넉넉한 양이었지요.

먹기 싫었던 반찬 한 접시가, 세계 과학사를 바꾼 셈이에요.

이 파프리카 이야기는 센트죄르지가 직접 남긴 노벨상 공식 강연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이름을 얻다

그런데 이보다 조금 앞서, 이 물질이 정말 괴혈병을 막는 그 ‘무엇’인지 확인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었어요.

센트죄르지는 미국인 동료 조지프 스비르벨리와 함께 기니피그로 실험했습니다. 기니피그는 사람처럼 비타민 C를 몸에서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동물이거든요.한 무리에게는 삶은 먹이를 주고, 다른 무리에게는 헥수론산을 더한 먹이를 주었어요.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헥수론산을 먹은 기니피그는 건강했고, 그렇지 않은 쪽은 괴혈병 증상을 보이다 죽고 말았어요

실험 결과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헥수론산이 바로 비타민 C와 같은 물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32년, 두 사람은 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발표된 실제 논문은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에서 1932년 원 논문으로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33년, 센트죄르지와 영국의 화학자 월터 하워스는 이 물질을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괴혈병을 막는 성질을 나타내는 이름이었어요.

Nature에 실린 1933년 아스코르브산 명명 기록에서도 당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삼켰던 그 병의 비밀이 마침내 이름을 얻은 순간이었지요.

센트죄르지는 이 연구를 포함한 생물학적 연소 과정에 관한 발견으로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비타민 C의 구조를 밝히고 합성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하워스는 폴 카러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았지요.

노벨상 공식 자료에서 센트죄르지와 비타민 C 이야기 보기

190년의 기록이 남긴 것

지금까지의 긴 여정을 정리해 볼게요.

1747년 — 제임스 린드, 배 위에서 감귤류를 먹은 괴혈병 환자들이 빠르게 좋아지는 것을 확인

1795년 — 영국 해군, 레몬즙을 선원들에게 훨씬 널리 지급하기 시작. 이후 괴혈병이 크게 감소

1920년대 — 센트죄르지, 훗날 비타민 C로 밝혀질 ‘헥수론산’을 분리해 연구

1932년 — 센트죄르지와 스비르벨리, 헥수론산이 비타민 C와 같은 물질임을 보여 주는 연구 발표

1932년 이후 — 센트죄르지, 파프리카에서 헥수론산을 대량으로 얻는 데 성공

1933년 — 헥수론산에 ‘아스코르브산’이라는 이름을 붙임

1937년 — 센트죄르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하워스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

린드의 실험에서 센트죄르지의 노벨상까지, 꼬박 190년이 걸렸어요.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누구도 한 번에 정답을 알아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씩 바통을 이어받으며 조금씩 진실에 다가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집어 드는 비타민 C 한 알에는 이렇게 긴 이야기가 깃들어 있답니다. 바다에서 스러진 이름 없는 뱃사람들, 배 위에서 실험을 감행한 군의관, 그리고 평범한 파프리카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한 한 과학자까지요.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비타민 C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은, 오히려 그 뒤에 찾아왔거든요.

다음 편 예고

오늘은 파프리카에서 비타민 C 연구의 중요한 열쇠를 찾아낸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았는데요.

다음에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천재 과학자는 왜 비타민 C에 그렇게 강한 확신을 가졌을까요?

그리고 그가 시작한 메가도스 논쟁은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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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비타민 C와 괴혈병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건강·과학 정보입니다. 역사 속 연구 결과가 오늘날 비타민 C 고용량 복용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타민 C를 고용량으로 복용하거나 질병의 예방·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경우에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현재의 의학적 근거를 확인하고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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